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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은간.. | 17/08/21 07:42 | 추천 50 | 조회 1711

[단편] 마법의 주문을 가지고 있는 청년 +335 [15]

오늘의유머 원문링크 https://m.todayhumor.co.kr/view.php?table=bestofbest&no=357979

청년은 마법의 주문을 알고 있었다.

" 그냥 확 죽어버릴 거야! "

그 말 한마디면 부모가 돈을 내놓았다. 돈이 없다며 앓는 소리를 내다가도, 청년이 실제로 죽는시늉까지 하면 어떻게 해서든 돈을 만들어오곤 했다.
그때마다 청년은 말했다.

" 흥! 그러게 처음부터 내놨으면 얼마나 좋아?! 맨날 돈이 없기는 뭐가 없어! "

그렇게 받아간 돈은 모두 불법 토토와 유흥비로 탕진했다. 부모가 하룻밤을 무릎 꿇고 사정사정해서 빌려온 돈을, 단 1분 만에 날린 적도 있었다.
청년에게는 상관없었다. 마법의 주문이 있었으니까.

" 그냥 확 죽어버릴 거야! "

부모는 차라리 자신이 죽고 싶은 심정으로 눈물을 흘렸지만, 청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불쌍했다. 남들처럼 부잣집에 태어났어야 했는데, 이렇게 가난한 집구석에 태어난 자신이 너무나 불쌍했다.

" 흙수저 알아 흙수저?! 흙수저 주제에 애는 왜 낳아서 나까지 흙수저로 만드냐고! "

그러니 부모가 자신을 책임져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 이젠 정말로 돈이 없단다... 정말이야. 이젠 빌릴 곳도 없단다... "

청년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동안에도 늘 이러다가 결국엔 돈이 나오곤 했으니까.

" 아씨 진짜! 나 죽어버릴 거라고! "

청년은 베란다 난간 위로 올라가, 당장에라도 앞으로 뛰어내릴 자세를 취했다.
물론 당연히 시늉뿐이었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부모가 돈을 마련해오겠다고 하며 황망히 달려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한데,

" 아! "

난간을 밟은 청년의 발이 미끄러지면서, 청년이 그대로 추락하고 말았다!

" 으아아악-! "

단말마를 지른 청년의 머리가 땅바닥에 박살 나기 직전!

" ?! "

시간이 멈췄다. 그리고,

[ 보나 마나 즉사네. 얼굴부터 떨어지는 것 좀 봐. 어으~ 되게 아프겠다. ]

청년이 고개를 돌리고 보자, 양복을 차려입은 사내가 청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빙긋 웃은 사내는 자신을 악마라 소개하며, 청년을 무사히 바닥에 착지시켜주었다.
어안이 벙벙한 청년이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 사내가 말했다.

[ 인생이 억울하시죠? 왜 남들처럼 부잣집에 태어나지 못했을까? ]

" ... "

[ 근데, 그거 아세요? 원래는 당신이 부잣집에 입양될 뻔했던 거 말입니다. ]

" 뭐?? "

[ 20년 전 당신이 태어나던 날, 부잣집에서 당신을 입양하기로 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 위의 두 분은 당신을 키울만한 사정이 안 되었거든요. 한데 마지막 순간, 당신이 방긋 웃는 모습을 보고서 두 분은 결정을 번복했습니다. ]

" 지금 그게 뭔- "

[ 시간을 되돌려드리죠. ]

" ?! "

눈을 반짝인 사내는, 양손을 한쪽씩 들어 보였다.

[ 20년 전으로 되돌아가던가, 몇 초 전으로 되돌아가던가. 선택하시죠. ]

" 뭐라고...? "

[ 20년 전, 갓난아기인 당신이 웃음을 보이기 전. 아니면 몇 초 전 당신이 미끄러지기 직전.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시면 됩니다. ]

" ... "

흔들리던 눈빛의 청년은 곧,

" 웃지만 않으면 부잣집 자식이 될 수 있다는 말이지... "

표정을 굳히며 외쳤다.

" 20년 전으로 되돌려 줘! "

[ 흠... ]

사내는 잠시 묘한 표정을 짓다가, 물었다.

[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만약 그 부잣집이, 저 두 분처럼 착한 부모가 아니라면요? 지금처럼 당신의 응석을 다 받아주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힘들지 않으시겠습니까? ]

청년은 입술을 비틀었다.

" 착한 부모? 돈 많은 부모가 착한 부모야! 나도 돈 많은 부모 밑에서 자랐으면 이 꼴로 살지 않았어! 내 인생을 제대로 다시 시작할 거야. 그러니까 어서 날 20년 전으로 되돌려 줘! "

청년은 당당했다. 그는 자신이 있었다. 어차피 그에게 부모란 건 마법의 주문 한 방이면 뭐든지 해결되는 존재일 뿐이었다.
사내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현명하시네. 알겠습니다, 그럼 눈을 감으시길. ]

청년은 얼른 눈을 감았다. 그의 감각이 점점 아득해질 때, 사내가 혼잣말이 들려왔다.

[ 확실히 그쪽이 더 낫긴 하죠. ]

.
.
.

" 응애애애-!! "

아기는 온 힘을 다해 울었다. 자신을 안고 있는 여인을 향해,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제발 날 놓아달라는 듯이 온 힘을 다해 울어댔다. 절대, 절대로 웃음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
.
.

다시 인생을 시작한 청년은,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길러졌다. 몇백만 원 짜리 과외에, 값비싼 식단, 전담 의사의 건강관리와 지속적인 외모관리까지.
하지만 청년은 여전했다. 달라진 거라고는, 불법 토토가 불법 카지노로, 뒷골목 주점에서 마시던 소맥이 강남 술집의 양주로 바뀌었다는 점뿐이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서서히 본색을 드러낸 청년은, 고등학생 때 그 행위가 절정에 달했고, 처음으로 부모에게서 '거절'을 맛보았다.

" 그러니까, 그 큰돈을 어디다 쓴다는 거냐? "
" 아 진짜! 아빤 몰라도 돼! 내가 그냥 쓸 데가 있다니까?! "

청년은 짜증이 솟구쳤다. 그동안 무조건 돈을 내놓던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이럴까?

" 아들한테 쓰는 돈이 아까워?! 어?! "

부자 아빠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눈빛은 침착했다.

"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 수 있지만, 그 사용처가 문제다. 네가 하고 다니는 일을 간섭하지 않으려 했지만, 최근에 들리는 이야기가 너무하더구나. 도박을 할 셈이냐? "
" 아 무슨 소리야 진짜! 내가 도박을 왜 해! 아니니까, 돈이나 좀 줘! "
" 아니, 당분간은 용돈 없이 생활하거라. "
" 아 왜에?! 진짜 좀! "

청년은 발광했지만, 아빠의 태도는 단호했다.
몇 번이나 떼를 쓰던 청년은, 마법의 주문을 쓸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 이것도 하나 안 들어주고! 나 그냥 확 죽어버릴 거야-!! "

청년은 부엌으로 달려가 식칼을 빼 들었다!

사실, 이때 청년은 불안했다. 그의 새 아빠는 매우 똑똑하고 침착한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만약, 냉정하게 꿰뚫어 보고 '할 수 있으면 해보거라!'라고 나오면 어쩔까? 그럼 청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데,

" 자, 잠깐! 그 칼 놓거라! 알았다! 알았으니까 그 칼 내려놓거라! "

기겁한 아빠는 절절맸고, 청년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부모들은 다 똑같았다. 아무리 배운 게 많고 일가를 이룬 사람일지라도, 자식 앞에선 어쩔 수 없구나!

" 정말이지? 그럼 돈 줄 거지? "
" 그래! 알았으니까 지, 진정하거라. 칼 내려놓고 어서! "
" 약속한 거야! "

그날 청년은 꽤 많은 금액을 받아갔지만, 순식간에 소모했다. 어차피 마법의 주문만 있으면 얼마든지 뜯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거침이 없었다.

한데? 그날 밤 고급주점에서 술에 취해 쓰러졌던 청년은, 낯선 방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청년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눈조차 떠지지 않았다.
그저 의식만 있었던 그의 귓가에,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려왔다. 둘 다 청년이 아는 목소리였다.

" ...-갑자기 칼을 들고 설치는데,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나? 죽기라도 했어 봐! 17년간 키워온 몸을 써먹지도 못 할 뻔했잖은가? "
" 아이고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
" 안 되겠어. 조금 더 키워두려 했더니, 보험비치고는 너무 비싸군! 장기이식용으로 키운 것한테 기둥뿌리 뽑힐 일 있나? 이럴 줄 알았으면 해외 불법 브로커를 이용하는 방법이 더 나았어. "
" 아유 그래도 회장님, 언제라도 필요할 때 장기를 꺼내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게다가 이 방법은 부자간의 장기이식이라 절차상 어떠한 문제도 없습니다. 이제 곧 정치계에 입문하실 분이신데, 지저분한 여지를 남기시면 안 되죠. "
" 으음...아무튼, 이만 처리해야겠네. "
" 그렇다면 그러셔야죠~! 그럼 일단은, 우리 회장님 간 안 좋으신 거 먼저 교체하고~. . . "

대화 내용을 듣던 청년은 경악했다!
그럼 자신이 아빠의 장기이식용 보험이었단 말인가? 언젠가 잡을 가축을 기르듯이, 자신을 길러왔단 말인가?

청년은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 17년간 아빠라고 불러온 인간이, 자신을 고작 장기용 가축으로만 생각해왔다니.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죽이려 하고 있다니.

겁에 질린 청년은 순간, 진짜 부모의 얼굴이 떠올랐다. 청년만 바라보며 살던 그 가난한 부모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엄마 아빠를 부르면 자신을 구해주기 위해 뭐든지 다 할 텐데, 그럴 수 없다는 사실에 눈물만 흘렸다.

그때,

[ 어라? 깨어나셨네? ]

부자 아빠와 대화 중이던 목소리가 청년의 얼굴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그제야 눈이 떠진 청년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의사복 차림의 그를 볼 수 있었다.

" 너, 너는?! 너 이 새끼-! "

자신을 20년 전 과거로 보내주었던 바로 그 사내였다.
청년은 멈춰있는 부자 아빠를 보며, 이 낯선 방의 시간이 또다시 멈춘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자신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 앞으로 1시간 안에 사실상 사망하실 겁니다. ]

" 너, 너너 이 새끼!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지! "

청년은 핏대를 세우며 발악했지만, 사내는 느긋하게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 왜 제게 화를 내실까? 저는 선택권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착한 부모를 선택한 건 본인이신데 말입니다. ]

" 너, 너...! "

[ 어차피 죽었을 목숨입니다. 이렇게, 누군가의 피와 살이 되어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시죠. ]

" 이 새끼! 너 이 새끼 죽여버릴 거야! "

청년은 '죽인다', '속였다', '귀신이 되어 저주할 테다' 등등의 소리를 치다가, 종국에는 애원했다.

"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제발! "

[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시네 하하하 ]

사내의 태평한 말에, 청년은 절규했다!

" 이런 부잣집 다 필요 없으니까 진짜 우리 엄마 아빠한테 데려다 달라고! 날 원래대로 돌려놓으란 말이야-! "

그러자,

[ 아항~! 선택 실수를 하셨단 뜻이었구나~! ]

" ! "

사내가 손가락을 '딱!' 튕기고- 순간, 주변의 풍경과 모든 것이 변했다!

낯선 방은 익숙하던 바깥으로 변했고, 침대에 누워있던 청년은 공중에서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기 직전의 자세로 변해있었다.
난간에서 떨어진 청년이 사내를 처음 만났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 아 아아...? "

[ 그러니까 사실은 20년 전이 아닌, 몇 초 전으로 돌아가고 싶으셨단 말씀이시죠? ]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청년은 황급히,

" 마, 맞아! 내가 원래 선택하려던 게 그거였다고! "

사내는 빙긋 웃은 뒤에 또다시,

[ 후회하지 않으시는 거 맞죠? ]

" 후회는 무슨 이 새끼야! 아, 아니...! 아저씨! 아저씨 님! 제발요! 제발 부탁드려요! "

빙긋 웃은 사내는 말했다.

[ 그럼, 눈을 감으시길. ]

.
.
.


" 아씨 진짜! 나 죽어버릴 거라고! "

외치며 난간에 올라서던 청년은 번쩍! 자신이 되돌아 왔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곧, 자신이 난간에서 미끄러질 거란 사실도!

황급히 상체를 뒤로 젖힌 청년은, 자신의 진짜 부모를 애타게 부르며 손을 뻗었다!

" 엄마! 아빠-! "

한데-,

" ...! "

청년은 두 눈을 부릅뜬 채로 굳어버렸다.

청년이 난간 위로 올라선 그 순간, 지친 얼굴의 부모는 고개를 내리깔며 청년을 외면하고 있었다.
마치, 청년의 마법 주문을 못들은 척하는 듯이.

" ... "

그대로 미끄러진 청년은 멀어지는 베란다를 바라보며 후회했다. 사내의 말이 맞았다. 진심으로,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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