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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vezo | 18/02/23 21:17 | 추천 60

한의학이 퇴출되어야 하는 이유.jpg +745 [26]

원문링크 https://www.ilbe.com/10383175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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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술이 퇴출되어야 하는 이유

번역가 이덕하

한의술에 대한 나의 입장

나는 한의술(한의학, 한방, 동양의술)이 퇴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에 있는 한의학과를 없애야 하며, 한의사 자격증 제도를 없애야 하며, 한의원과 한방 병원을 폐쇄해야 한다. 병을 치료하면서 돈을 벌고 싶은 한의사가 있다면 의대에서 의학을 제대로 배운 후에 의사 자격증을 따면 될 것이다.

나는 한의술의 온갖 치료법 모두가 전혀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의술의 온갖 치료법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그래서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된 치료법을 과학적 의학에서 흡수해야 한다. 그리고 효과가 없다는 것이 입증되는대로 그것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

방송에 한의사가 전문가로 소개되면서 썰을 푸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시정되어야 한다. 돌팔이는 전문가가 아니다.

1.효과가 있는 한의술 치료법도 있을 있다는 반론에 대해

나는 한의술의 온갖 치료법 대부분이 가짜 약 효과(placebo effect, 위약 효과)를 뛰어넘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아마 몇 가지 치료법은 가짜 약 효과를 뛰어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한의술의 정당성을 뒷받침할 수는 없다.

원시 부족의 주술사의 치료법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런 치료법이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부족 사람들이 치료법의 효과를 믿기 때문이다. 그들도 한국인 못지 않게 오랜 기간에 걸쳐서 막연하게 경험적으로 그런 치료법의 효과를 ‘검증’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치료법 중에는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어서 과학적 의학에 포함된 것들도 있다. 특히 해당 부족이 사는 지역에서 나는 식물을 이용한 치료법 중에 그런 사례가 많은 것 같다. 즉 원시 부족의 주술사의 치료법에도 가짜 약 효과를 뛰어넘는 효과가 있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원시 부족의 주술적 치료법을 주술 치료사 자격증 제도를 만들어서 공식적 권위를 부여해야 하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런 치료법은 대체로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으며 주술사들이 과학적 검증에는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 한의술도 마찬가지다.

2.과학적 의학에 문제가 많다는 반론에 대해

물론 현대 의학(소위 양의학)에도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의학의 한계 때문에 치료하지 못하는 병도 많고, 돈이 없는 사람이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의사가 불친절한 경우도 많고, 의료 사고를 내고도 책임을 지지 않는 의사도 많다. 현대 의학은 이상적 의학과 비교해서 부족한 점이 많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현대 의학을 이상적 의학과 비교하는 것은 한의술 논쟁에서는 의미가 없다. 현대 의학을 한의술과 비교해야 한다. 현대 의학이 이상적 의학에 아무리 못 미치더라도 한의술이 현대 의학보다 훨씬 못하다면 한의술은 퇴출되어야 한다.

나는 현대 의학의 과학적 한계, 제도적 문제점 등을 지적하고 그것을 개선하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고, 생리학적 지식을 넓히고, 제도를 개선하는 것에 누가 반대하겠는가? 단지 한의술과 관련된 논쟁에서는 한의술이 현대의 과학적 의학에 비해 어떤지를 따지는 것이 핵심 논점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3.과학적 의학에서도 치료의 메커니즘이 모두 밝혀진 것은 아니라는 반론에 대해

현대의 생리학도 완벽하지 않다. 따라서 과학적 의학에서 쓰는 치료법의 경우에도 치료의 메커니즘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현대에도 왜 치료가 되는지를 몰라도 치료 효과가 있고 부작용이 작다면 그 치료법을 이용한다. 심각한 난치병의 경우에는 상당한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효과가 있다는 것이 검증된 치료법을 단지 치료의 메커니즘을 잘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이용하지 않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문제는 한의술의 경우에는 치료의 메커니즘은 고사하고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것 조차도 입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의사들은 대체로 아예 치료 효과 검증에 관심도 없다. 또는 막연한 경험을 통한 ‘검증’을 입증이라고 믿는다.

가짜 약 효과를 뛰어넘는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려면 막연한 경험으로는 안 된다. 이중 맹검법(double blind test)과 엄격한 통계학이라는 과학적 절차와 방법론이 필수적이다. 한의술에 빠진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내가 한의술에 반대하는 이유는 치료의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을 따지기 이전에 바로 이 효과 검증조차도 안 된다는 점에 있다.

4.성경과 동의보감

기독교 성직자들은 성경 인용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에게 성경은 진리의 원천이다. 한의사들도 동의보감 같은 고서를 비슷하게 대한다.

무신론자들의 과학은 새로운 이론이 나오면서 계속 진보한다. 반면 기독교들은 변하지 않는 성경 구절에 매달린다. 기독교인들에 비하면 덜하기는 하지만 한의사들도 동의보감이라는 변하지 않는 고서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기독교인들이 성경 구절을 모두 따르는 것이 아니다. 현대 산업국에 사는 성직자들 중에 장애인을 성소에 들여놓지 말라는 레위기 21장이나, 이웃 부족에 쳐들어가서 남자들을 죽이고 여자들을 강간하라고 부추기는 신명기 20장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들은 자기 입맛에 따라 성경 구절을 선택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한의사들도 비슷하다. 그들은 필요하면 동의보감이라는 권위에 의존한다. 하지만 성경에 온갖 황당무계하며 사악한 구절들이 있듯이 동의보감에도 온갖 황당무계한 치료법들이 있다. 한의사들은 그런 치료법이 있는 동의보감의 구절은 그냥 무시한다.

만약 성경에 사악한 구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성경 무오류설이 부정된 셈이다. 그래도 기독교 성직자들은 성경에는 진리만 있다고 우긴다. 만약 동의보감이 황당무계가 치료법이 있다는 것을 한의사가 인정한다면 동의보감이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다. 그래도 한의사에게는 동의보감은 거의 절대적인 권위가 있다.

과학자들은 과거의 위대한 과학자들의 책을 어떻게 대하나?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부정할 것은 부정한다. 뉴턴의 위대함을 부정할 물리학자는 없지만 그의 중력 이론보다는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이 더 낫다는 것을 부정할 물리학자도 없다. 그렇다면 왜 현대의 물리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이 뉴턴의 중력 이론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뉴턴의 중력 이론과 운동 법칙도 빛의 속도에 비해 매우 느리거나 중력이 작을 때에는 거의 완벽에 가깝게 정확하다고 여전히 믿는 것일까? 그 이유는 과학적인 실험으로 검증해 보았기 때문이다.

반면 한의사들은 대체로 과학적 검증 절차를 무시한다. 그들은 동의보감이 우리 조상들의 오랜 경험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오랜 경험이 온갖 황당한 치료법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런 문제에 대해 기독교 성직자와 한의사들은 매우 편리한 입장을 취한다. 기독교 성직자들은 현대인의 도덕적 상식에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경우에는 슬그머니 성경 구절을 무시한다. 왜냐하면 그런 구절까지 옹호하면 너무 바보 같아 보이거나 사악해 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의사들은 현대인의 의학적 상식에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경우에는 슬그머니 동의보감의 구절을 무시한다. 왜냐하면 그런 구절까지 옹호하면 너무 바보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과학적 검증은 안중에도 없다. 너무 바보 같아 보이지 않아서 장사를 계속 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5.대중매체의 영향

TV를 비롯한 대중 매체는 대중들이 한의술을 믿게 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발휘하는 것 같다.

TV에서 한의사는 전문가로 소개된다. 그러면 한의사는 많은 경우 동의보감을 인용하면서 썰을 푼다. 그리하여 대중들은 한의술과 동의보감이 상당히 신뢰할 만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것은 TV에서 무당(요즘에는 역술인이나 무속인으로 소개된다)이나 수맥 찾기(dowsing)를 하는 사람이 전문가인양 소개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들은 TV에서 관상, 사주, 수맥 등에 대해 헛소리를 늘어놓는데 TV의 권위가 그것을 웃음거리가 아닌 진지한 명제로 만들어주는 경향이 있다.

TV 드라마에서 한의술은 대단한 치료법으로 묘사된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허준>, <대장금> 같은 드라마에서 한의술은 정확히 진단하고 강력한 치료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물론 거의 모두 뻥이다. 수백 년 전에는 동서양 어느 곳에서도 큰 병을 제대로 치료할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대중의 인기를 끄는 한의술은 예수의 기적에 대한 뻥으로 유지되는 기독교와 별로 다를 바 없다.

6.동종요법의 인기

동종요법(homeopathy)에는 상당히 복잡한 절차와 이론이 있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맹물을 마시는 것이다. 그들은 치료 효과가 있다고 믿는 어떤 물질을 여러 번 희석한다. 계산해보면 해당 물질 분자가 하나도 포함되지 않을 정도로 희석한다. 즉 맹물이 된다. 물론 순도 100% 맹물(H2O)을 얻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해당 물질 분자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희석 과정에서 얻는 치료약은 사실상 맹물이다. 이런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동종요법가들은 물의 기억설이라는 희한한 이론도 만들었다.

동종요법이 한의술과 다른 점은 말도 안 되는 치료법이라는 점이 너무나 뻔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냥 맹물을 마시는 것을 치료법이라고 내세운다. 하지만 동종요법은 상당히 인기를 끌어왔으며 지금도 어느 정도 인기가 있다. 동종요법을 찾는 환자들은 그것이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동종요법가들 중에도 효과가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동종요법의 인기는 한의술에서 말하는 경험적 검증이라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잘 입증되었듯이 가짜 약 효과라는 것이 있다. 즉 가짜 약을 먹어도 어느 정도 효과가 발휘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인간의 사고는 여러 가지로 왜곡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가짜 약 효과를 제외하면 아무 효과도 없는 맹물을 마시는 치료법도 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권위를 획득하는 것이다.

7.투시하는 소녀의 치료법

러시아의 어떤 소녀가 투시를 비롯한 초능력이 있으며 그런 초능력을 바탕으로 치료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투시라는 것은 전문 마술사라면 누구나 아는 간단한 트릭이다. 그 소녀와 어머니가 사기를 치고 있다는 점은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녀에게 치료를 받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선다.

여기에서도 가짜 약 효과와 인간의 사고 왜곡 경향이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 소녀는 여러 가지 애매한 진단을 한다. 예컨대 “이 사진 속의 인물은 머리와 허리에 문제가 있으며 콩팥이 좋지 않다”는 식이다. 많은 사람이 두통이나 요통을 앓고 있기 때문에 이런 애매하고 포괄적인 ‘진단’이 들어맞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사람들은 빗나간 진단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지만 적중한 진단에 대해서는 ‘신통하다’는 반응을 보일 때가 많다.

이것은 점쟁이들의 성공 비결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점쟁이가 틀렸을 때보다 점쟁이가 맞혔을 때를 더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점쟁이가 수 많은 예언을 해서 그 중 몇 개를 맞히면 사람들은 그 점쟁이가 용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8.혈액형 성격론과 바넘 효과

사람들은 애매한 묘사를 보면 자신에게 잘 들어맞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이런 것을 바넘 (Barnum) 효과라고 한다. 예컨대 “나는 새로운 환경에서는 왠지 소심해진다”는 사실상 모든 인간에 적용된다. 그럼에도 이런 식의 항목들로 이루어진 설문지를 가지고 실험을 하면 “어쩌면 나의 성격과 이렇게 잘 들어맞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혈액형 성격론에서 주장하는 A형과 B형의 특성들로 이루어진 설문지를 가지고 A형과 B형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얼마나 자신과 잘 들어맞는가?”를 조사하면 많은 사람들이 귀신 같이 맞힌다고 신기해한다. 하지만 똑 같은 실험을 A형과 B형을 바꾸어서(A형에게는 B형의 특성을 묘사한 설문지를 주고 B형에게는 A형의 특성을 묘사한 설문지를 준다) 해도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귀신 같이 맞힌다고 신기해한다.

한의사들의 인기에는 이런 요인도 작용하는 듯하다. 제대로 된 의사와는 달리 한의사들은 혈액형 성격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처럼 상당히 애매한 말로 진단한다. 그러면 환자들은 그것이 꼭 맞는 진단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9.우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 온갖 대안 의술이 인기를 끄는 이유

세계의 각 지역마다 온갖 종류의 대안 의술(alternative medicine, 대체 의학) 또는 민간 요법이 있다. 가짜 약 효과나 바넘 효과도 그런 것들의 인기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이다. 여기에 또 다른 요인도 작용하는 듯하다.

사람들은 우연도 필연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컴퓨터로 난수(random number)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어도 사람들은 뭔가 규칙과 패턴을 찾아내는 경향이 있다.

보통 병에 든 사람은 치료를 전혀 받지 않아도 증상이 호전되기도 하고 악화되기도 한다. 따라서 전혀 효과가 없는 모종의 치료를 받아도 상황은 비슷할 것이다. 치료법과 상관 없이 어떤 때는 증상이 악화되고 어떤 때는 증상이 호전된다. 만약 치료를 받은 이후에 증상이 호전되면 사람들은 치료 때문에 증상이 호전되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만약 치료를 받은 이후에 증상이 악화되면 어떨까? 그는 ‘의사’를 찾아가서 오히려 병이 악화되었다고 불평할 것이다. 그럼 의사는 “조금만 더 기다리면 치료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라는 식으로 얼버무릴 것이다. 그 후 병이 호전된다면 환자는 이번에도 치료 때문에 병이 낫고 있다고 착각한다.

10.가짜 효과를 고려한 이중 맹검법을 적용한 엄격한 절차가 필요하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사람들의 사고는 완벽하지 않다. 인간은 온갖 이유로 사고가 왜곡되는 경향이 있다. 애매한 말로 예언, 진단 등을 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적중을 향하는 방향으로 편향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적중과 빗나감이 혼합되어 있는 경우에 사람들은 적중에 더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더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고를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암시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가짜 약 효과는 그런 암시가 신체적으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같은 가짜 약이라도 비싼 약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경향이 있다.

요컨대 인간의 “경험적 입증”이라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믿을 것이 못 된다. 20세기의 심리학과 의학은 인간의 이런 측면을 상당히 상세히 밝혔다. 왜 인간이 이렇게 한심하게 설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진화 심리학자들이 파헤치려 하고 있다.

어쨌든 인간의 사고에는 온갖 왜곡 경향이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치료법에 효과가 있는지를 제대로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가짜 약 효과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약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꼭 가짜 약 실험도 같이 해서 가짜 약의 효과를 뛰어넘는지를 따져야 한다. 암시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는 어떤 약이 진짜 약이고 어떤 약이 가짜 약인지 몰라야 한다. 심지어 의사가 무의식적으로 암시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의사도 어떤 약이 가짜 약인지 몰라야 한다. 양쪽 다 모르게 한다고 해서 이중 맹검법(double blind test)라고 부른다. 물론 모든 것을 잘 기록해서 엄격한 통계학을 적용해서 분석해야 한다.

11.경혈의

한의사들은 침을 놓을 때 경혈에 놓아야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명제를 어떻게 과학적으로 검증할 것인가?

환자를 둘로 나누어서 한 집단에는 한의사가 경혈이라고 주장하는 곳에 침을 놓고 다른 집단에는 경혈이 아닌 곳에 침을 놓은 후에 비교하면 된다. 이 때 침을 놓는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경혈에 침을 놓고 있다는 사실을 환자에게 알릴 수 있으므로 그런 가능성을 최대한 배제할 수 있도록 실험을 설계해야 한다.

만약 두 집단 사이에 치료 효과의 측면에서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면 경혈 개념이 쓸모가 없다는 것이 어느 정도는 입증된 것이다. 만약 그럼 실험이 있었는데도 경혈 개념이 쓸모가 있다고 믿는 한의사가 있다면 엄격한 과학적 절차를 통해서 치료 효과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실험을 한 결과 아무 곳이나 찔러도 경혈에 침을 놓은 것과 비슷한 효과를 발휘했다.

12.어떤 뻔뻔스러운 제약회사

어떤 제약회사에서 신약을 내놓으면서 이렇게 발표했다고 상상해 보자.

이 신약은 결핵 치료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결핵 치료제가 효과가 있는지 여부를 검증할 임상실험을 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습니다.

아마 이 회사는 엄청난 비난을 받을 것이며 많은 나라에서는 법적 제재를 받을 것이다.

발표 내용이 다음과 같이 바뀐다면 사정이 다를까?

이 신약은 결핵 치료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결핵 치료제가 효과가 있는지 여부를 검증할 임상실험을 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약이 효과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내용이라면 어떨까?

이 신약은 결핵 치료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결핵 치료제가 효과가 있는지 여부를 검증할 임상실험을 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약이 효과가 있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수백 년 전에 나온 어떤 책에 이 약에 들어간 어떤 성분이 결핵에 효과가 있다고 써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사정은 거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회사는 마찬가지로 엄청난 비난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한의사가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하게도 비난에서 면제된다. 예컨대 동의보감에 쓰여 있다는 사실이 면죄부를 제공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그 회사에서 이런 식으로 발표했다면 어떨까?

이 신약은 결핵 치료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결핵 치료제가 효과가 있는지 여부를 검증할 임상실험을 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약이 효과가 있다고 믿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엄격한 임상실험을 해서 이 약에 효과가 없다는 것을 밝힌다면 그 때에 이 약의 판매를 중지하겠습니다.

이번에도 그 회사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약효를 입증할 책임이 약을 판매하는 회사에게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약의 약효를 입증할 책임은 한의사에게 있다. 한의학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그 약효를 반증할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위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의사들이 한약의 효과를 검증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의사도 정부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13.중의학

미신적 의술 행위를 국가에서 자격증 제도로 보장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거의 없다. 한국과 중국을 제외하면 몇 나라나 있을지 궁금하다.

많은 사람들이 중의학의 성공을 예로 들며 한의술도 비슷한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중의학은 어떤 면에서 성공했다. 중국에서는 대단한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이 치료 효과 때문인지 여부를 면밀히 따져야 한다.

내 생각에는 중의학이 중국에서 권위를 얻은 이유는 몇 십 년 전에 중국 지배자들이 중의학을 민족 의학으로 키우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은 지독한 독재 국가였다. 따라서 지배자들이 맞다고 하면 누구도 목숨 또는 직장을 걸지 않고는 반론을 제기하기 힘들었다. 이것은 구소련에서 리센코(Lysenko)가 스탈린의 지지를 등에 업고 황당무계한 생물학 이론을 펼친 것과 상황이 비슷한 것 같다. 리센코는 한 물 간 라마르크주의를 소련에서 부활시켰다. 그것에 대적한 제대로 된 진화 생물학자는 추방되거나 감옥이나 정신병원에 갇히거나 심지어 죽임을 당했다. 나치 독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여전히 중국은 독재 국가이며 중의학에 대한 과학적 반론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걸어야 하는 사회다. 반면 한국은 상당히 민주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한의술을 본격적으로 비판하기를 주저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의학이 정치적으로 성공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중의학이 과연 의학적으로 또는 과학적으로 성공했는지 여부를 따져야 한다. 중의학이 치료 효과로 승부해서 성공했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그것을 보여주는 과학적 근거를 대야 한다.

14.의사들의 밥그릇 싸움?

한국 사회에는 한의술에 대한 체계적인 비판이 별로 없다. 하지만 의사들 중에는 한의술 비판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이런 의사들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것일 뿐이라고 매도한다.

물론 한의술이 퇴출되면 의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며 의사들의 돈벌이가 좋아질 것이다. 지금도 상당한 특권층인 의사들이 돈을 더 잘 버는 것이 배 아플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의사들이 한의술 비판을 하게 되는 동기 중에는 밥그릇에 대한 애착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그 비판이 정당하냐 여부다. 정당성을 따질 때에는 밥그릇에 도움이 되느냐 여부를 무시해야 한다. 과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할 때 또는 남이 발표한 논문을 씹을 때 밥그릇이라는 요인이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같은가? 그렇다고 어떤 논문을 열심히 비판하는 어떤 과학자에게 “당신 밥그릇 때문에 그러는 거지?”라고 따지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과연 그 비판이 논리적으로, 실증적으로 합당한 비판인지 여부를 따져야 한다.

만약 의사들의 비판이 논리적으로, 실증적으로 합당하다면 그 의사의 비판 동기가 밥그릇 때문이든, 영웅심 때문이든, 심심해서든, 어떤 한의사에 대한 개인적 원한 때문이든, 아니면 국민 건강에 대한 순수한 걱정 때문이든 상관 없는 문제다.


세줄요약

1. 이 신약은 결핵 치료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결핵 치료제가 효과가 있는지 여부를 검증할 임상실험을 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습니다.

2. 하지만 우리는 이 약이 효과가 있다고 믿습니다.

3. 왜냐하면 수백 년 전에 나온 어떤 책에 이 약에 들어간 어떤 성분이 결핵에 효과가 있다고 써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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