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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떡 | 18/06/19 23:21 | 추천 22 | 조회 741

(펌) 가난하고 자상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740 [5]

보배드림 원문링크 https://m.bobaedream.co.kr/board/bbs_view/best/169593

아래 글, 댓글들을 보며 마음이 착잡해져서 씁니다.

저는 가난하지만 자상하고 사랑을 듬뿍 주신 부모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그야말로 길거리에 나앉아

하룻밤은 파출소에서 보내고 (당시 12시 통금이 있었어요)

엄마 지인을 통해 안 어떤 아줌마 집의 지하실에서 살았어요.

쌀이 없어 미수가루로 연명했고 설탕이 없어 사카린?을 타먹었어요.

가끔 엄마가 어디선가 밥을 얻어오면 물을 많이 넣어 끓여서

네 식구가 나눠먹었어요.

당시 초등 저학년이었던 남동생이 한그릇 먹고는 나 국물만 좀 더 달라고 해서

우리끼리 막 웃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부모님 마음이 어땠을까 싶어요.

그런데 정말 희한하죠?

그때 그런 상황이었는데 저는 그렇게 비참하고 슬프지 않았어요.

왜였을까?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늘 따뜻하고 든든하게 지켜준다는 느낌이었어요.

하루는 엄마가 지방에 있는 이모한테 가서 돈을 빌려오겠다고 이틀 자고 오겠다고 나갔어요.

밖에서 놀고 있는데 동네 언니가 너네 엄마 집 나간거라고.

그러고 나간 엄마들 돌아오지 않는다고. 가난이 너무 힘들어서 혼자 먹고 살려고 도망 간거라고.

저는 그럴 리가 없다고 말했지만 내심 불안했어요.

당시 집에 전화도 없었고 이모집 전화번호도 모르고 연락할 길이 없었죠.

그런데 엄마가 이틀 후 참외 한 봉지를 사들고 이모한테 얻은 옷을 한 벌 쫙 빼입고 돌아왔어요.

저는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는지 몰라요.

그 날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Top 5 안에 듭니다. ㅎㅎㅎㅎ

사춘기 되면서부턴 좀 많이 힘들었어요.

왜 우리집은 이럴까...고민이 많았죠.

가끔은 차라리 엄마,아빠가 나쁜 사람들이라서 그냥 내가 깨끗하게 이 세상을 떠나버리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온갖 고생을 다 해서라도 우리를 먹여 살리겠다는

부모님을 두고 차마 그럴 수는 없었죠.

천만다행스럽게도 공부머리가 좀 있어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불같이 공부해서

학력고사 대박이 터져 명문대에 입학했어요.

아마 신께서 제가 너무 안쓰러웠는지 한 번의 대운을 주신듯 했어요.

그때부턴 많이 달라졌어요.

당시 금지였던 과외 알바를 (몰래바이트라고 불렀어요) 하면서 꽤나 목돈을 쥘 수가 있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서 완전히 다른 인생의 길로 접어들었어요.

조그만 아파트도 사고 우리 식구는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됐어요.

그후 직장생활 꾸준히 하고 결혼도 하고 재미나게 살았습니다.

가끔은 부자 친정을 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죠.

하지만 또다시 태어나도 저는 제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날 겁니다.

무능했지만 저희를 정말 아껴주셨던 아빠와 보낸 유년시절의 기억이 참 아름답게 저장되어 있어요.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한다는 생각으로 사셨던 엄마는 제 인생에 가장 큰 축복이었어요.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여러분이 만약 가난한 집 자식이라면 열심히 사셔서 인생을 바꿔 보세요.

알아요. 많이 어렵다는 거. 그 시절과 지금은 또 다르다는 거.

하지만 부귀영화는 아니라도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건 가능해요.

여러분이 만약 가난한 부모라면, 열심히 노력하면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그 사랑을 보여 주세요.

아이들에게 부모는 우주예요. 아이들은 비싼 음식 먹고 자라는 게 아니라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

오늘 미국 국경을 불법으로 넘다가 적발되어 격리수용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정말 울컥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넋두리 좀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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