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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은간.. | 17/12/13 08:35 | 추천 50 | 조회 1682

[단편] 귀신을 다루는 구지 선생 이야기 +364 [19]

오늘의유머 원문링크 https://m.todayhumor.co.kr/view.php?table=bestofbest&no=380547

" '구지 선생'은 정말 신통하시지! 내가 다른 무속인은 몰라도 구지 선생은 진짜라고 믿는다니까? "
" 구지 선생님요? 태어날 때부터 귀신을 보셨다는 그분? "
" 소문에 듣자 하니, 구지 선생은 손가락으로 귀신을 직접 만지고 부리신다던데! "
" 아 왜 그런 말이 있잖아! 귀신이 되어서라도 원한을 갚고 싶은 사람은, 구지 선생을 찾아가라! "


사내는 소문을 쫓고 쫓아, 드디어 구지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 구지 선생님! 제발 제 원한을 갚을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

무릎 꿇은 사내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구지 선생은,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 나는 지금 행복해. "

사내는 그 말뜻을 헤아려보려 했지만, 알 수 없었다. 대신 구지 선생은 사내를 방안으로 들였다.

" 무슨 원한인데? 말해 봐. 편하게 반말해도 돼. 내가 너보다 정확히 하루 늦게 태어났으니까. "

사내는 설마 자기 얼굴만 보고도 생일이 며칠인지 맞췄을까 확인하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구지 선생의 기분이 나빠질까 봐 참았다. 지금 그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 구지 선생이었으니까.

사내는 금세 눈시울을 붉혀가며 자신의 억울한 인생을 털어놓았다.

- - - - - - - - - -

저는 고아 출신입니다. 세상살이가 힘들어도, 같은 처지의 아내가 있어서 견딜 수 있었습니다. 조선소에서 잡부로 일하면서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가 있어 행복했습니다.

제 아내는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가난으로도 숨길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조선소를 시찰하러 왔던 두석규 회장이 제 아내를 보고 눈독을 들인 겁니다.

전 처음에는 그것도 모르고, 갑자기 직위가 오르는 것에 마냥 기뻐했습니다. 심지어 제가 회장의 총애를 얻었다는 소문도 돌았었습니다. 순식간에 말단 잡부에서 관리직까지 올라간 저는, 일본으로 파견까지 나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멍청하게도 우리 가족이 드디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했습니다. 3년만 해외에서 고생하면 우리 가족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며, 고민도 없이 일본 파견을 받아들였습니다.

실수였습니다. 저는 일본으로 가는 배 위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았고, 바다로 버려졌습니다. 기적처럼 어느 섬에 닿아 목숨을 구했지만, 이렇게 한쪽 다리와 허리가 병신이 되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일본에서 병신 같은 몸으로 살아남기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야 한다는 마음이 없었다면 절대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1년이 걸려 한국 땅을 다시 밟았을 때, 저를 기다리고 있던 건 끔찍한 절망이었습니다.

아내는 두석규 회장의 사모님이 되어있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모든 것이 두석규 회장의 음모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찾아간 공장에서는 이미 모든 소문이 돌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불문율이었고, 제 편을 들어줄 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몰매를 맞고 쫓겨나야 했습니다.
제 마음은 지독한 복수심으로 들끓었습니다. 두석규 회장을 찢어 죽일 수 있다면 제 영혼이라도 팔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병신같은 몸으로 제가 할 수 있는 복수가 없었습니다. 이 빌어먹을 현실의 벽은 복수조차 용납하지 않습니다.

저는 차라리 죽어버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원통합니다! 억울합니다!
구지 선생님! 제발 제 원한을 갚을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살아서 갚지 못할 이 원한, 귀신이 되어서라도 갚고 싶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 - - - - - - - - -

사내의 긴 이야기를 들은 구지 선생의 첫 말은, 사내를 허탈하게 했다.

" 원한을 갚겠다고 귀신이 되어봤자 뭐해? 어차피 그런 인간들은 귀신을 봐도 전혀 상관하지 않을걸? 귀신 좀 붙는다고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뭐 없잖아? "
" 아.. "

사내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지만, 구지 선생의 다음 말이 남아 있었다.

" 다만, 한 가지 방법은 있지. 원래 아무나 알려줘서는 안 되는 방법인데.. "
" 그게 뭡니까? 제발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
" 음. "

구지 선생은 근처 서랍으로 가서 하얗게 말린 붕대 같은 걸 가져왔다. 구지 선생이 테이블 위에 펼치자,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폭에 30cm 정도의 길이가 되었다.
구지 선생은 진지해진 얼굴로 설명했다.

" 이승에서 손가락을 가져가는 거야. "
" 예? "
" 검지 끝에 이 천을 돌돌 마는 거야. 그리고 그 천을 최소 444일간 절대로 풀면 안 돼. 그러면 완성되지. 만약 죽을 때 이 천을 감은 상태로 죽으면, 귀신이 되었을 때도 손가락 끝에 이 천이 감겨있어. 그 상태에서 이 천을 풀면 딱 1초간, 그 손가락은 현실에 간섭할 수 있어. 귀신이 인간을 만질 수 있다는 거지. "
" 아! "

사내는 놀랐다. 그러나 곧, 조금 애매한 표정이 되었다.

" 1초라고요...? "

1초는 너무 짧았다. 1초로 뭘 할 수 있을까? 그것도 고작 손가락 한 마디로.
구지 선생은 사내의 생각을 정확히 읽은 것처럼 말했다.

" 이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감이 잘 안 오나 본데, 잘 들어. 귀신은 사람의 몸을 통과할 수 있어. 원한을 갚고 싶은 자의 뇌 속에서 네 손가락아 갑자기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심장에서 갑자기 손가락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단 1초라도 그곳을 헤집을 수 있다면? "
" 아...아! 아!! "

사내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가능하다! 이것이라면 진짜 복수가 가능하다!

" 부탁드립니다! 제발 제게 그 주술을 부탁드립니다! "
" 해줄 수 있어. 어렵지 않아. 하지만 그 뒷감당은 네가 해야 해. 귀신이 된 뒤에 인간을 해치면 다시는 인간으로 환생할 수 없어. 네 영혼은 영원히 벌레로 환생하게 될 거야. 감당할 수 있겠어? "
" 저는 무엇이든 감당할 수 있습니다! 복수만 할 수 있다면 영원히 벌레로 살아도 좋습니다! "
" 말처럼 쉽지 않아. 막상 귀신이 되면 영혼을 자각하게 될 테고, 후회될지도 몰라. 그때 가서 되돌릴 순 없어. 인간을 해치지 않는다 해도, 이승의 손가락을 가져간 것만으로도 그 벌을 받게 될 테니까. "
" 괜찮습니다! 절대 제 마음이 바뀔 일은 없습니다! "

이를 악무는 사내의 표정은 결의에 차 있었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구지 선생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어. 해줄게. "
" 감사합니다! "

구지 선생은 얇은 펜 하나를 꺼내더니, 펼쳐놓은 천에 한자를 쓰기 시작했다. 사내가 전혀 모르는 한자들이 깨알같이 촘촘하게 쓰였다.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집중하는 구지 선생의 모습은 온 기력을 쏟아붓는 듯, 식은땀마저 흘리고 있었다.
사내는 구지 선생의 검지 한 마디가 없는 것을 그제야 발견했다.

구지 선생은 힘겹게 마지막 점을 찍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며 땀을 닦았다.

" 됐다. 오른손 이리 내놔. "

침을 꿀꺽 삼킨 사내가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구지 선생은 조심스럽게 천을 들어, 한자가 안으로 가도록 사내의 검지 끝을 감기 시작했다.

" 이제 곧 손가락 끝의 감각이 없어질 거야. 이제 이 손가락은 영영 이승에 없다고 생각하면 돼. "
" 아, 예.. "

천의 마지막 부분이 손가락에 붙인 것처럼 달라붙었다. 사내는 정말로 손가락 끝의 감각이 사라진 걸 느꼈다. 그것은 구지 선생의 말이 진짜라는 증거였다.

"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
" 은혜는 무슨 당연한 일을 한 걸 가지고. 명심해! 죽을 때까지 절대 풀면 안 돼. 이 천을 푸는 건, 귀신이 되었을 때 그때 한 번뿐이야. 실수로라도 풀지 마. "
" 예 알겠습니다. 절대 풀지 않겠습니다.정말 감사합니다. "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하던 사내는 문득, 조심스럽게 물었다.

" 그런데..선생님 손가락도 혹시.. "
" 아? 이거? "

아무렇지도 않게 검지가 잘린 손을 들어 보인 구지 선생이 말했다.

" 나도 똑같이 했었어. 그런데 복수를 포기했지. "
" 아 "
" 난 그냥 내가 스스로 포기한 거야.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는 안 해. 네가 알아서 하겠지. "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복수 따위 의미가 없다느니 뭐니 하는 그런 따위의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새삼 구지 선생이란 인물이 크게 느껴졌다. 오늘 처음 만났지만, 존경심이 들 지경이었다.

" 구지 선생님. 혹시 허드렛일이라도 제가.. "
" 마음대로 해. "

사내는 죽는 날까지 구지 선생에게 은혜를 갚으며 살기로 마음먹었다.

.
.
.

사내는 구지 선생의 점집에 묵으며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다. 마당을 청소하고, 찾아오는 손님을 안내하고, 집안일부터 운전기사 역할까지 모든 것을 성심성의껏 했다.
사내는 444일이 지나면 바로 목숨을 끊을 생각이었고, 구지 선생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구지 선생은 절대 말린다거나 조언을 하려고 나서지 않았다. 그것이 사내는 감사했다.

생각보다 구지 선생은 한가했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길 즐겼다. 사내는 홀로 작은 방에 남아 사색할 시간이 많아졌다.
그럴 때면 그는 언제나 복수를 생각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뜨거움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조금씩 변해가기는 했다.
처음에는 두석규 회장을 증오했다. 하지만 요즘은 자꾸만 아내가 더 원망스러웠다. 회장 사모님 노릇 톡톡히 하며 지내고 있다는 아내가 말이다.

자신이 죽었다는 소식 이후 1년도 안 되었는데, 아내는 홀라당 두석규와 결혼했다.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혹시 어쩌면, 처음부터 아내도 계획에 동참했던 걸까?

시간이 흐를수록 누굴 더 증오하는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사내가 귀신이 되어서 복수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고작 검지 한 마디와 1초뿐이었으니까.
그는 검지 한 마디와 1초로 한 번에 둘 다 죽일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해봤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둘 중 한 명에게만 복수를 해야 했다.

아내에게 복수할 것인가, 두석규 회장에게 복수할 것인가?

그는 마지막 날까지도 그것을 고민했다.
이윽고 444일이 지난 그 날, 사내는 구지 선생에게 작별 인사를 드렸다.

" 그간 정말 감사했습니다. 죽어서도 이 은혜는 잊지 않고, 미물이 되어서라도 은혜를 갚기 위해 찾아오겠습니다. "
" 은혜는 무슨. 고생해. 가는 길에 맛있는 밥이나 먹어. "

구지 선생은 빈말로라도 사내의 자살을 말리지 않았고, 마지막 밥값까지 쥐여주었다.
큰절을 올리고 점집을 나선 사내는, 마지막으로 거하게 식사를 했다. 미련이 없었고, 망설임도 없었다. 해가 저물어 깊은 산으로 들어간 사내는 원한을 되새기며 준비한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득히 죽음을 맞이한 사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온 세상이 회색으로 보였다.

[ 아! ]

자신의 시체를 내려다본 사내는, 성공적으로 귀신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원귀가 되어서일까, 그의 원한은 이성을 잃을 정도로 들끓었고, 순식간에 원한이 있는 곳으로 날아갈 수 있었다.

두석규의 저택 앞에 선 사내는 자신의 오른손 손가락 끝을 확인했다. 확실하게 천이 감겨 있었다.
이 손가락 끝으로 심장에 구멍을 뚫을 것이었다. 하지만 누구를?

그는 잠깐 고민했다. 두석규냐, 아내냐. 나는 지금 누구를 더 원망하는가?

[ ... ]

그는 곧, 두석규로 마음을 결정했다. 그래도 아내는 자신이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었으니까.

저택 안으로 통과해 들어간 사내는 두석규의 방을 찾아가려고 했다. 한데, 거실에 있던 아내를 보자마자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고급스러운 잠옷을 입은 세련된 스타일의 아내. 돈을 들여 관리한 것인지 자신과 살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 되어 있는 아내.
사내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아내! 아내다! 자신은 지금 아내를 더 증오한다!

그는 손가락 끝의 천을 조금씩 풀며 아내의 걸음을 뒤따라갔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기고 따라 들어간 방에는, 침대 위에 누워있는 어린 아들의 모습이 있었다. 사내의 아들이었다.

아이를 본 사내는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아이를 위해서는 아내를 죽이면 안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미 원귀가 된 그의 증오는 너무나 컸다. 이성적으로 멈출 수 없었다. 무섭게 이를 악문 사내는 아내의 심장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정확히 아내의 심장 속에서 마지막 남은 손끝의 천을 벗기려던 그 순간,

" 이 얼굴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

아내가 아이를 향해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바로 사내의 사진이었다.

[ ... ]

" 네가 꼭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해. 알았지? 절대 아버지를 잊으면 안 돼. 나중에 네가 꼭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한다. "

흉악하게 일그러졌던 사내의 표정에 힘이 빠졌다. 사내의 원한이 사라지고 있었다.

힘이 풀린 사내의 양손이 내려가고, 그 바람에 손가락에 감아둔 천이 모두 벗겨졌다. 그 순간 허공에 사내의 검지 한 마디가 1초간 나타났지만, 아내와 아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사내는 붉어진 눈시울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절대 잊지 않은 아내, 대신 원한을 갚아주려고 한 아내. 그것은 사내가 겪은 고통을 모두 사라지게 할 정도로 커다란 위로였다. 사내는 웃었다. 이 순간 그는 복수를 포기했다.

웃음을 띤 그의 몸이 빛에 휩싸이며 서서히 성불했다.

" 어? "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본 아내의 눈에, 자기도 모르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
.
.
.
.
.

" 응애~! "

우렁찬 울음을 터트리며 아기가 태어난 어느 병실.
사내는 마지막 순간 복수를 포기함으로써 인간으로 다시 환생할 수 있었다. 다만, 이승의 손가락을 가져간 그 벌은 받아야만 했다.

간호사의 당혹스러운 음성이 들렸다.

" 아, 아기 손가락 하나가 잘려있는 것 같아요...! "
" 뭐라고요?! "

이제 막 출산을 끝낸 여인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고, 굳은 표정의 남편은 얼른 아기의 손가락을 확인했다. 아내가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을 때, 남편은 얼른 말했다.

" 여보! 걱정하지 마! 괜찮아! 손가락 끝이 조금 잘린 것뿐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내 성이 '구 씨'니까 이 아이 이름을 아홉 손가락 '구 지'라고 짓자! 손가락으로 기죽지 말고 드러내놓고 당당하게 살라고 말이야! "

구지라는 이름이 붙은 아기는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신기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보는 듯, 그리고 그 무언가를 만질 수 있는 듯이, 짧은 검지의 끝을 허공으로 내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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