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게 실시간 커뮤니티 인기글
종합 (2046714)  썸네일on
호우호우.. | 17/08/14 00:30 | 추천 56

일베 간 불운한 아재 썰 푼 게인데 (feat.해명과 부탁) +401 [53]

일간베스트 원문링크 www.ilbe.com/9959251549

20170127_03592647.jpg


새벽 감성으로 알코홀 마시고 쓴 글인데

인기글까지 보냈니.


내가 저 글을 쓴 의도는

불쌍한 나ㅠ 위로해줘ㅜ 라는 마음이

그래, 전혀 없다고는 말을 못하겠지.


하지만

나 같이 어머니 없이도 청소년기를 지내고

금수저 물고 태어나지 않아도

적어도 사람으로서의 도리는 지키고

번듯하게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걸


너희들에게도

그리고 내 가족들에게도

그리고 무엇보다

내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보여주고 싶었던 의도가 더 컸다.


그 의도가

스스로의 신변을 최대한 감추고

치부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내 아집에 가려져

곡해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해명 및 부탁의 이 글을 마지막으로

썰주화충은 다시 눈팅충으로 돌아갈거다.


내가 니들한테 이래라 저래라

할 자격도 주제도 아니지만


게이들의 의혹이나

내가 전에 제대로 전하지 못한 부분들

본문 통해 최대한 전하도록 할게.


1. 금수저가 징징거리네ㅉㅉ


댓글로 두어번 말했지만.

나 정말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거 아니다.


우리 부모님 외벌이셨고,

아버지는 경찰공무원이셨다.

경정으로 퇴직하셨다.


퇴직 이후엔 물려받으신

충북쪽 작은 과수원 돌보셨고

책도 읽으시고 센터도 나가시며 소일거리만 하셨다.


정말 없거나 부족하게 살진 않은 정도야.

당시 가사 도우미 분들은

주5일, 하루 4시간 X 1달 해도 60 정도였고.

아버지 '서재'는 작은 누나 방 정리해서 마련한 공간이었다.


나는 학부는 성적장학금과 학자금대출, 과외로

그리고 대학원은 연구실 월급 보태거나

나중에는 산학장학금으로

최대한 집에 학비 부담 가지 않게 했다.


작은 누나 미국 유학도

누나의 학부 역시 이공계였기에

학교에서 지원금 수월히 받을 수 있었고


석박 따는 동안 집에서 부대 비용 다 쳐서

나한테는 2천 지원해주셨고,

누나한테 5천 정도 보태준 걸로 안다.


그 외에 학위 받을 때까지

우리 남매 더 받은 건 없어.


물론,

그 정도면 많은 일게이들이 지적했듯

그보다 못한 대다수보다 훨씬 나은 삶을 누렸다는 걸

부정하진 않을게.


2. 그래서 너 어디 졸업했다고.


20170813_035935437.jpg

위 ㅇㅅㅍㅌ 짤에서 보이듯

ㅇㅅㄷ 공대쪽(대학 구분 14 보이노.) 학부 졸업했고

동 대학원으로 학위 따러 갔다.

대학원 쪽은 내 정보가 너무 많이 나와서 안된다.

양해해라.


3. 어차피 보험금에 상속으로 한몫 단단히 챙겼겠지 앙 기모띠


나로서는 제일 화가 많이 나고

내가 왜 저 글을 올렸지.. 자책했던 부분이다.


아버지 사후 상속은

우리 남매에게 1:1:1로 돌아갔다.


그리고 보험금.


너희들이 말하듯

'ㅍㄹㄷㅅ 앙 기모띠'

'가족 고려장하고 재산 내차지 개이득'

전혀 아니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10억 한참 덜 받았다.


물론 사장어른 내외나 우리 누나 부부가

따로 남겼었던 유언은 없었어.

꼬맹이가 유일한 상속자였지.


누나와 나는 상의를 통해

우리만 유일한 친척이 아닌데

괜히 애기의 친가 일가붙이와 얼굴 붉히고 싶지 않았기에


그리고, 아이를 키워본 경험도 사회경험도 일천한

우리의 부족한 사회경험을 고려하여


꼬맹이 관련 재산의 관리와 집행은

타당하고 분별있는 이유 하에

무조건 그쪽 어르신들께 빠짐없이 알리고

조언을 얻고 난 후에 행사하기로 결정했고


다행히도 꼬맹이 친가 친척들도 별 말 없이 납득해주었어.


그 당시엔 작은 누나가 법정후견인이었지만

(누나는 그 때문에 해외 커리어를 포기하고

국내 연구직/교수직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한다.)

내 결심과 다른 여타 여건상 귀국을 미뤘고

지금은 나에게 후견인 지위가 있다.


그리고 하늘에 맹세코

나는 꼬맹이의 정당한 상속분에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애초에 그 돈은 '내 것'이 아니야.


꼬맹이가 당연히 누렸어야 할

조부모와 부모의 한없는 내리사랑과

화목한 가정과 행복한 미래를 송두리째 빼앗긴 대가야.

감히 가볍게 함부로 다룰 수 없는 무게감을 가진 가치라고.


더욱이 어려서 어머님을 여의었던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끊임없이 찾아오는

가족의 부재라는 무력감과 상실감을

속으로 끙끙 삭혀야 하는 맘을 잘 알고 있는데


그걸 가볍게 혀 위에서 굴리고 재단하는 모습이

결코 좋게 보이진 않는다.


4. 기타 잡다한 것들.


급여 보여주고는 싶은데

나 아직 산학장학금 근속 묶여있어서 안된다.

짤리면 반환은 물론 위약금 물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아마 아까 연봉 대강 말한걸로도

연구직 쪽에 있는 게이들은


아 저놈 무슨 과로구나!

아 저놈 회사 어디나 어디쯤 되겠구나!

하고 다 알아봤을걸...


대충 말하면 S이하 H이상

끝.


누나 부부가 시부모 모시고

효도여행 가는데

왜 애기는 안 데려 갔냐고도 많이 묻더라.


그 때

잠잠해지긴 했다지만

아직까지도 메ㄹㅅ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괴담으로 으스스하게 메아리치고 있던 때다.


여행은 온천 중심이었고

감기 걸린 꼬맹이가

혹여나 이 사람 저 사람

몸 담그는 탕에 들어갔다가


만에 하나의 경우가 발생하면 어쩌지

하고 사장어른 내외께서

일정까지 축소하시며

애기는 놓고 가자고 하셨었다.


우리 꼬맹이는

큰 누나 부부가 안 좋은 일을 겪고

어렵게 어렵게 얻은 금지옥엽 공주님이었다.

외동 아들의 귀한 혈육을 아끼시는 마음이셨겠지...


전 글 첫 사진

손목은 왜 까맣게 칠했냐고

세월호 팔찌 감추려고 하는거 아니냐고

하는 글 있었는데.


사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도 한참 슬럼프와서 방황할 때

우울증 도져서 철없는 짓을 한 적이 있었고

좀 흔적이 크게 남아서

혹시 보일까 가렸다.


그 때 큰 누나의 지극정성 덕에 철 들었고

다시는 그렇게 자신을 가벼이 여기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내가 우리 큰 누나를 너무나도 그리워하고

또 존경해 마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입으로는 잘 살게 힘낼게 하면서

무력하고 모래성같이 멘탈 빈약한 면모

너희들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질까해서

좀 그랬다.


시계로 대강 가려지긴 한다.

참고로 시계는 째마 찬다.

20170813_035935438.jpg


맨 위의 사진은

지금 현재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이다.

내 조카와 내 작은 누나.


어린 시절부터 줄곧 나를 지탱해줬던

아니 우리 가족의 유대감을 계속 이어줬던

그리고 지금의 내가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준 사람의 유일한 혈육과


늘 시큰둥하고 고집쟁이긴 해도

비슷한 분야의 선배로서

그리고 우리 남은 가족의 실질적인 가장으로서

앞길을 잘 닦아주는 내 누나.


내가 내 이야기를 하면서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나처럼 무뚝뚝한 주제에 멘탈도 약하고

의지나 삶에 대한 가치관이 흐릿하던 사람이


가족이라는 존재에 의해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고

얼마나 든든한 지지대로 삼아


어디가서 욕은 안 얻어먹고

적어도 사람답게는 살아갈 수 있는가

이 얘기를 하고 싶었다.


무튼

내 얘기는 이제 진짜 끝.


가족 아니면 주변 소중한 사람을

꼭 소중히 여겨라.

잘들 살아. 행복하고.

[신고하기]

댓글(3)

이전글 목록 다음글

1 2 3 4 5
    
제목 내용